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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스포츠의 태동과 성장
국내 항공스포츠의 태동과 성장

The Incipiency and Growth of the Air Sports in the Country

김백윤(우석대학교)1)ㆍ온문섭(근영여중)2)



Ⅰ.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현대인들은 건강한 삶을 위하여 다양한 레저스포츠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회생활 속에서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바람직한 활동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과 같은 항공스포츠는 자연적인 상승기류를 이용하여 보다 높이 보다 멀리 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인간이 품고 있는 하늘에 대한 호기심의 충족과 비상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김백윤, 1999).




1) 우석대학교 시간강사 2) 근영여중 교사

현재 항공스포츠동호인 클럽과 스쿨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항공회 산하에 한국활공협회, 한국스카이다이빙협회, 한국경항공협회, 한국열기구협회 등 항공스포츠 종목별 전문협회가 구성되어 동호 회원들의 교육과 자격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대학 체육학과에 항공스포츠 과목을 개설하거나 항공스포츠 특기자를 특별 전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항공스포츠를 전문으로 하는 학과가 생겨나게 되었다(노여래, 1998).

근래 들어 동호인클럽이 주최하는 항공스포츠대회 이외에 지방자치단체가 후원하거나 주최하는 대회가 많이 개최되고 있으며, 이러한 양적인 확대뿐만 아니라 비행성능이 향상된 새로운 기체가 계속해서 개발되고 보급되면서 항공스포츠 비행기술이 진전되어 행글라이딩과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선수들이 세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고 입상하는 등 국내의 항공스포츠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발전해왔다(노승영, 1997; 온문섭, 2000).

이렇게 되기까지 초기에 항공스포츠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스포츠라기보다는 모험과 그리고 탐구적인 자세로 항공스포츠에 매달리게 되어 생겨난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국내 항공스포츠의 태동과 성장과정을 사료를 통하여 정리함으로써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항공스포츠의 발달사를 정립할 필요가 있겠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항공스포츠가 태동하였던 역사적인 일들을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 열기구, 초경량항공기 별로 고찰해 보고, 항공스포츠의 성장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 홍보의 기회가 되고 동호인들의 확산에 기여했던 군과 민간단체의 항공스포츠 행사와 대회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2. 연구의 제한점

1) 항공스포츠 종목은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 열기구, 초경량항공기로 국한하였다.

2) 문헌 연구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의 사료만으로 한정하였다.

Ⅱ. 국내 항공스포츠의 태동

1. 행글라이딩

인간은 새를 보면서 하늘을 날아오르고 싶어해 왔는데,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할 때 희랍의 이카루스 신화를 말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50여년전 조선 헌종시대 이규경 선생이 쓴 “우주문장전”에 “비차변증설”이란 대목이 있어서 “원주에 사는 정평구 선생이 따오기 모양을 한 비차를 만들어 날개로 배를 치며 바람을 일으켜 공중에 떠올라 백척을 능히 날 수 있었으나 맞바람이 불 때는 앞으로 날아갈 수 없으며 회오리바람이 볼 때는 날지 못하고 떨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기록은 그 연대로 보아 서양에서 새를 모방한 날개치기 비행을 꿈꾸던 시대인데, 우리나라에서도 훌륭한 비행체를 만들어 내었고 또한 비행에도 성공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나 보다 자세한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다(이수열, 1995).

그렇지만 국내에서의 실제적이고 과학적인 활공은 영국의 조지 케일 리가 “Flyer”라는 3엽 글라이더로 세계 최초의 유인활공에 성공한 1849년보다 120여년 후인 1975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이승재는 TV에서 외국사람이 연처럼 생긴 것을 타고 비행하는 화면을 보고 대나무로 모형을 만들어 중랑천 제방에서 성공적인 비행을 하였고, 이에 자신을 얻은 그는 알루미늄 파이프와 태피터천(판초우의)으로 만든 길이 5.5m, 날개폭 8m, 무게 11kg의 행글라이더인 “은하 1호”를 완성하여 청담동 야산에서 85회 이상의 시도 끝에 활공에 성공하였으며, 처음에는 10- 20초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점차 몸으로 조종하고 착륙하는 방법을 체득해나가면서 나중에는 3분 20초의 활공시간을 기록함으로써 국내 행글라이더의 효시가 되었는데, 이 기체는 NASA의 연구원이었던 로갈로박사가 설계한 델타윙과 흡사한 초창기 행글라이더였던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1975년 4월 12일 김석환을 초대회장으로 모시고 한국활공협회가 출발하게 되었으며, 1977년 12월 15일 이승재는 형 이연재 그리고 최종윤과 함께 길이 7.5m, 폭 12m의 2인승 행글라이더인 “해성호”를 제작하여 교육에 사용하는 등 불모의 한국 항공스포츠를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여 “한국의 라이트형제”라는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정병우, 1995).

협회가 출범하면서 명성클럽, 조인회, 블랙이글 등 행글라이딩 동호인 모임이 탄생하였으나 초창기 20대 초반 또는 중반의 연령층이었던 동호인들이 사회 진출과 결혼 등의 개인적인 이유로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못하게 되어 행글라이딩은 80년대 이후부터 큰 발전을 보지 못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1979년 5월 5일 백준흠을 비롯한 조인회 회원들이 동대문 운동장 상공에서 기구에 매달려 올라간 행글라이더를 기구에서 분리시켜 비행하는 기구분리비행을 시도하였으며, 1981년에는 일본 벳푸에서 열린 제3회 세계 행글라이딩 선수권 대회에 처음으로 선수를 파견하게 되었다.

또한 1984년 12월 31일 백준흠이 63빌딩의 옥상에서 비행에 성공하여 건물비행 세계기록을 수립하였으며, 1988년 6월 7일 최광남에 의해 가스기구에 연결한 행글라이더가 1만 2천 미터의 고공비행에 성공하게 되는 등 모험적인 노력이 계속되었다(월간항공, 제29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항공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가고 있는데 항공행사가 많지 않은 국내의 현실에서 공군 참모총장배 행글라이딩 대회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행사로 항공스포츠가 활성화되고 성장해나가는데 기반을 조성해주는 의미가 깊은 대회가 되어왔다.

공군 참모총장배 대회는 1985년 경주 토함산에서 제1회 대회를 연이래 1987년 남한산성에서 제2회 대회를 그리고 1988년 단양 소백산에서 제3회 대회를 개최하는 등 매년 10월이면 대회가 펼쳐지고 있으며, 공군사관학교는 1989년부터 행글라이딩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여 행글라이딩 교육관과 기초훈련장을 건립하여 행글라이딩이라는 항공스포츠를 통하여 사관생도들에게 실질적인 비행감각을 느끼게 함으로써 장차 전투 조종사로서의 자질을 구비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게 된 것이다(월간항공, 제30호).

우리나라 동호인 단체 중에서 가장 많은 활공인을 보유한 순수 아마추어 대학생 동호인 모임으로 1982년 5월 15일 한국 행글라이딩 대학생 연합회가 창립되었고, 1985년에는 한양대 김석원을 중심으로 미싱, 재단, 하네스 제작, 시험비행 등 5명이 부분별로 분담하는 체계적인 제작라인을 형성하여 1991년까지 100여대의 행글라이더를 제작함으로써 재정이 열악한 대학팀뿐만 아니라 일반 클럽의 장비 확보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어 행글라이딩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들 출신은 국내 항공스포츠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월간항공, 제25호).

2. 패러글라이딩

국내에서의 패러글라이딩은 1982년 특전사 중사 서넛이 강하용으로 사용되는 파라코멘더 낙하산으로 남한산성에서 비행을 시도하여 성공하였는데 유명한 등산장비 제조업체인 “사레와”의 독일 지사장이 이를 목격하고 촬영한 사진과 인터뷰한 내용이 후에 독일 항공잡지에 실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한편 패러글라이딩 장비의 생산과 대중화는 유럽지역에서부터 시작되어 국내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행글라이딩을 주도하던 이수열, 송진석, 홍경기 등이 주축으로 패러글라이딩을 도입하고 교육을 시작하였고, 이후 간단한 장비와 안전성을 가진 패러글라이딩의 특성으로 인해서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항공스포츠에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인기종목이 되었다(정병우, 1995).

1988년 3월에는 국내 최초로 아직은 낯설기만 한 직장인 패러글라이딩 써클인 “진로도매센타 패러글라이딩 써클”을 조직하여 큰 호응을 얻었는데, 초대 회장 송재일을 비롯한 24명의 회원은 회사의 재정지원으로 월 2회의 정기비행을 하는 등 사원의 복지와 처우 개선, 건전한 취미생활을 도모하는 직장인 클럽의 탄생과 활성화가 기대되었다(월간항공, 제14호).

또한 1989년 12월 10일에는 제1회 에어맨컵 패러글라이딩 대회가 경기도 광주군 매산리 한국활공협회 훈련장에서 체공 및 정밀착륙 경기로 열렸는데 8명의 심판과 150여명의 관람객이 보는 가운데 79명의 선수가 기량을 펼쳤으며, 1990년 10월 13일과 14일에는 제1회 체육부장관배 마스터즈컵 전국 패러글라이딩 대회가 양평 유명산에서 개최되어 200여명의 동호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뜨거운 경연을 벌렸다(월간항공, 제8호, 제18호).

특히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사회체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레저에 대한 욕구가 태동하기 시작하면서 항공스포츠 동호인이 늘어나고 동호인 클럽 결성이 증가되며 각종 항공스포츠 행사와 대회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편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인 대교실업은 섬유공학을 전공한 서성준이 1975년부터 군수용 낙하산 전문제작업체에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1983년 패러세일과 요트의 돛을 생산하는 업체를 설립하였는데, 1986년 유럽각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패러글라이딩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된 챔피언쉽에서 1위를 비롯 10위권 이내 선수중 6명이 대교의 상표인 에델을 사용함으로써 그 우수성이 입증되게 되었으며, 1991년에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에 세계 패러글라이더 시장의 10분의 1인 1500대 정도를 수출하여 4백50만달러의 물량 공급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대교는 최신 장비와 우수한 교관진을 투입하여 비행강습회를 실시해 패러글라이딩의 저변확대에 힘쓰는 한편 세계대회에 참가하는 대표선수도 지원해오고 있다(월간항공, 제29호).

1990년 10월 27일부터 3일간 경기도 광주군 소재 특전교육단 종합강하 훈련장에서는 제14회 육군 참모총장배 고공경연대회가 개최되었는데 패러글라이딩 종목을 신설되어 스카이다이빙 선수 2백여명과 전국 20여개 패러글라이딩 동호인 클럽에서 8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이 대회는 각종 항공스포츠 시범행사도 곁들여져 항공스포츠 인구의 저변확대와 동호인들 상호간의 친선을 도모하고 기술을 교류하고 증진하는 만남의 장이 되어 항공스포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월간항공, 제18호).

국내의 패러글라이딩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참가한 것은 1991년 9월 7일부터 22일까지 프랑스의 오트프로방스 지역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 패러글라이딩 선수권 대회로 한국활공협회는 8월 1일부터 7일까지 경남 언양에서 선발전을 개최하였으나 일기불순으로 정식대회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간 동호인들의 기량을 평가하여 송진석외 6명의 대표선수를 임의선발하여 출전시켰다(월간항공, 제29호).

3. 스카이다이빙

스카이다이빙은 항공기나 기구 등을 이용하여 높은 고도에서 점프한 후 자유강하 하다 지정된 고도에 도달하였을 때 낙하산을 산개하여 지상으로 내려오는 스포츠로써 이러한 스카이다이빙에 사용되는 낙하산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다.

1919년 4월 28일 미국의 레스리 엘 어빙은 오하이오의 멕콕들판에서 최초의 스카이다이빙을 시도하여 낙하산 자유강하에 성공하였고, 1922년 10월 22일 조종사인 헤리스 중위가 비행기고장으로 비상탈출하여 자유강하 하면서 지상 500피트에서 낙하산을 산개하여 목숨을 건진 최초의 인물이 되었는데, 이러한 일들은 낙하산강하가 스포츠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의 스포츠 파라슈팅은 프랑스의 레오 발렌틴에 의해 자유강하시 아취형의 몸자세를 실험하여 지속적이고 균형잡힌 강하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를 사용하여 회전이나 연속동작을 조절하는 기초기술인 일명 “발렌틴 자세”를 개발함으로써 수많은 동호인들이 생겨나고 민간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세계각국에서 보편화된 레저스포츠로 각광받게 되었다(스포츠항공 창간호).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60년 육군 중위였던 김광모가 미국의 포드브랙 군사교육 중에 낙하산 강하교육을 받음으로써 한국 최초의 강하자가 되었고, 그후 1965년 1월 20일 여의도기지에 근무하던 미국인 톰슨과 한국인들이 주축되어 낙하산 강하팀을 구성하여 사단법인 대한항공협회의 산하단체로 등록하고 3월 15일 교통부로부터 낙하산 강하허가를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낙하산 강하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4월 16일에는 대학생 특수 체육의 일환으로 30여명의 대학생 낙하산 강하교육을 실시하였다.

1969년 청와대에 진정하여 군항공기를 이용하여 보다 나은 환경에서 강하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으나 오일파동이 있었던 해에 대학생 낙하산 강하교육을 통해서 배출된 학생들이 청맥사건에 연류되어 순수성이 상실되면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강하활동이 육군항공기의 지원이 중단됨으로써 기나긴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스카이다이버들은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1980년 12월 10일 특전사출신의 친목단체로서 고공강하회를 발족하고 고공강하경연대회에 참가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가면서 점차 회원이 증가하여 1983년 2월 25일 대한낙하산협회로 개칭하여 대한항공협회의 산하단체로 정식 승인을 받게 되었다(스포츠항공, 창간호).

4. 열기구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에 의해 열기구가 발명된 이후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100여년 이상의 기간동안 유일한 비행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기구는 구피 안에 공기를 가열해 가벼워진 공기의 부력을 이용 비행하고 있는데, 비행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서도 비행을 할 수 있으며, 바람을 타고 비행하여 구름과 같이 유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기 있는 항공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항공스포츠로써 열기구가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나일론과 프로판 가스가 보급되면서부터인데, 1973년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카키에서 제1회 열기구 세계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고, 매 2년마다 세계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월간항공, 제7호).

국내에서 열기구의 시발점은 1985년으로 당시 고려항공화물 해외업무담당 이사인 이선종이 영국 브리스콜에 있는 열기구 비행학교에서 필 클라크 교관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후, 백성기와 함께 열기구 1대를 들여와 정식 감항검사를 1호로 받고 7월 잠실 탄천 고수부지에서 1시간 30여분간의 계류비행을 선보임으로써 국내 최초의 열기구 비행이 되었다.(김진희, 1997).

또한 이선종은 국내에서 최초의 열기구 조종자격을 취득한 사람으로 1987년 일본항공협회로부터 조종면장을 받음으로써 외국인이 면장을 취득하는 제1호가 되었으며, 공역확보 등 제반 비행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100시간이 넘는 자유비행 경력을 쌓아 국내 최초의 열기구 조종교관 자격증을 소지하게 되었다(월간항공, 제39호).

한편 1989년 4월 국내 최초의 열기구 “펠콘”이 탄생하였는데 함준식을 비롯한 7명이 일반 스테인리스를 사용하여 부천에 있는 가스공장에 의뢰하여 공동으로 기구용 버너를 만들고 등나무를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깎고 다듬어 곤돌라를 만드는 등 13개월의 노력 끝에 염광여상 운동장에서 처녀비행에 성공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기구협회가 탄생하게 되었다(월간항공, 제7호).

1990년 9월 제11회 북경 아시안게임 문화행사 조직위원회의 초청으로 로얄벌룬 클럽 김세식 회장 등 9명이 방중하여 북경항공학원 비행팀과 함께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열기구비행선 “꿀벌 6호”를 타고 대륙 축하비행을 하였고 9월 9일에는 박홍일 대원이 한국인 처음으로 백두산에서 패러글라이딩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14일에는 해양소년단 박은수에 의해 만리장성에서 패러글라이딩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한중간 화합의 무대를 펼침과 동시에 한중간 항공스포츠 교류의 새 장을 열었다(월간항공, 제18호).

1990년 12월 백준흠은 12인승 열기구로 국토횡단 비행을 시도하여 서울 광진교 한강 고수부지를 이륙한 후 강원도 동해시 삼화까지 7시간 30분을 비행하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1991년 3월 제주에서 제1회 제주 중문 리조트컵 국제 열기구 대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국내의 열기구는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9월에 열렸던 제2회 세계 한민족체전에 높이 60미터의 세계 최대의 아트벌룬(Art Balloon)이 송미경에 의해 비행에 성공하였다(이상두, 1991).

5. 초경량항공기

초경량항공기는 타면조종형의 ULP(Ultra-Light Plane), 무게중심이동형의 ULM (Ultra-Leger Motorise), 동력 행글라이더와 패러글라이더, 패러플레인(Para-plane)과 자이로플레인(Gyro-plane) 등으로 구분되는 데, 국내에서 초경량항공기에 대한 시도는 행글라이더 동호인이던 박흥수에 의해 행글라이더에 모터를 달아 비행을 시도한 것이 최초이며, 1985년 10월 3일 추자도와 함덕 해수욕장간 56km의 제주해협을 ULM으로 비행하여 횡단하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1988년 3월 1일 문용선은 ULP인 “Drifter” 기종을 타고 진도와 함덕 해수욕장간 해협비행에 성공하기도 하였다(이상두, 1999;방석문, 1992).

1989년 9월 1일에는 박흥수, 전영윤, 홍경기, 오태석의 주축으로 국내 최초의 ULM클럽인 서울에어로클럽을 창단하였는 데 한강 광나루에서 비행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동호인들의 저변확대가 기대되었다(월간항공, 제8호).

국내에서 초경량항공기를 제작한다는 것은 항공산업분야가 낙후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볼 때에 소재를 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일뿐더러 설계는 자료나 데이터가 없는 황무지와 같은 상황에서 더군다나 어려운 일로써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다. 따라서 항공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항공 동호인 및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호 정보교환을 통해 협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1991년 10월 11일에는 현대고등학교 과학기술반 담당 구기본 교사를 비롯한 10여명의 과학반 학생들에 의해 “현대10”이라고 명명되는 1인승 초경량항공기를 완성하여 시운전하였는데 학생들의 순수한 기술에 의해 완성되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일이었다(월간항공, 제30호).

한편 패러플레인은 1978년 미육군 항공국에서 산림, 목장감시 등 근거리 감시용으로 개발되었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사장되었던 것을 1985년 미국의 스나이더가 재개발해 스포츠 동호인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하였는데, 패러글라이더에 엔진을 장착한 형태로 조종줄에 의해 방향이 전환되고 속도조절로 고도를 변경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패러플레인이 첫선을 보인 것은 1987년 3월 오장근에 의해서인데, “은빛날개 1호”라 지칭된 패러플레인은 엔진을 제외한 모든 소재를 국산을 사용해 기체의 설계제작은 물론 캐노피까지 제작한 것이며, 한강변 탄천에서 첫 시범 비행한 은빛날개는 보안상의 이유로 비행허가를 받지 못하여 지상 80cm정도밖에 비행하지 못하였으나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다섯 번째로 개발된 것이다(월간항공, 제16호).

Ⅲ. 국내 항공스포츠 성장

1. 항공스포츠 조직의 체계화

국내에서 여러 민간항공 단체를 관장하고 항공스포츠 동호인을 대표하는 조직은 건설교통부 산하에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대한민국항공회로 1945년 신익희 선생을 초대회장으로 창립된 조선항공회가 전신이며, 대한항공협회를 거쳐 1957년 국제항공연맹FAI(Federation Aeronautique International)총회에서 국가를 대표해 정회원국으로 가입하였고, 1976년 이사국으로 승격되어 발언권이 확대되었다.

대한민국항공회는 국제항공연맹 총회에 대표단 파견과 회의참석 및 산하 각 단체 대회 참가와 각국 민간항공단체와의 친선교류를 도모하고 항공관련 규약 및 규정의 제정, 비행공역신청, 자격증 발급 및 관리, 비행기록 및 대회의 승인 등 항공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국내외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1981년 우리나라 민간항공이 첫 운항을 개시한 10월 30일을 교통부에 건의하여 “항공의 날”로 제정 민간항공 발전 유공자의 서훈 추천과 포상으로 항공발전의 일익을 도모하고 있다(월간항공, 제24호).

국내 항공스포츠 분야는 1991년을 기점으로 체계화되었는데 이는 교통부장관이 1989년 11월 1일 지정한 토함산, 구성산 및 1990년 6월 1일 지정한 영종도 등 총12곳의 초경량비행공역에서 지상 500피트 지표면고도 이내로 비행하여야하며, 다른 곳에서 비행하고자 할 때는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항공법이 개정됨에 따라 항공스포츠 조직의 회원관리와 자격제도가 시행되고 체계가 잡혀가기 시작하였으나 반대로 항공스포츠를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고 우려하는 동호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져갔다(월간항공, 제15호).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항공법이 제정된 이후 1961년 정부 항공법 제정하여 1991년 제8차로 개정되는 항공법에 초경량 비행장치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비행 계획의 승인, 안전기준과 자격기준을 설정하는 초경량 비행장치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경량 비행장치에 대한 관리철저로 사용자의 안전의식을 제고하며 등록관리를 행함으로써 사고예방 및 사고후의 처리대책 강구가 용이한 효과가 개대되는 것에 반하여 초경량 비행장치가 레저 및 스포츠용임에도 불구하고 등록과 비행승인을 받게 하는 것은 국민의 항공 권익을 보장하기에는 항공스포츠계의 의견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었다(월간항공, 제23호).

1991년 한국활공협회는 1991년 6월 15일에서 16일까지 행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 비행자 대상으로 59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1회 지도자 연수회가 매산리 특전사교육단 활공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연수회에서는 활공협회 운영과 비행이론에 대한 강연과 기초소양을 연마하고 기상학, 비행이론 시험과 실기시험을 실시하여 교관 및 비행자격증을 발급함으로써 활공스포츠의 비행자격과 회원교육을 체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월간항공, 제27호).

또한 초경량항공기협회는 1991년 6월 29일 초경량항공기 운영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여 항공기 정비와 감항검사, 항공법규 및 관제, 비행기초이론, 수도권 비행의 제 규정 및 안전학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었다.

한편 열기구가 움직이는 광고판으로서 광고매체로의 인기가 높아져가자 그 동안 형식적이던 한국열기구협회는 회원등록과 기능시험을 통한 면장발급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여 1991년 6월 9일 경기도 광주군에서 실기시험을 실시하기로 하였으나 일부 협회관계자가 동호인들과 함께 일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바람에 동호인들의 호응이 저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구협회 관련자와 동호인들간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협회운영은 난항을 거듭하게 되고 그 결과 비행자격증의 취득과 회원으로서의 활동에 제약을 받는 등 동호인들이 불이익과 피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월간항공, 제27호).

이렇게 국내의 항공스포츠 분야는 1991년을 기점으로 체계화되었는데 국제항공연맹의 가입단체의 장이나 교통부장관이 지정한 단체나 기관의 장이 비행장치에 대한 기능증명이나 비행면허증 발급이 가능하도록 항공법 시행규칙 제43조 2항에 명시되어 있었으나 그 동안 초경량비행장치의 기능증명, 면허증 발급 관장기관이 없어 항공스포츠 분야의 문제점으로 대두되어 각 협회별로 기능증명사업, 비행면허증 발급작업에 착수해 항공스포츠 분야의 체계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 항공스포츠 행사의 활성화

어려운 가운데서 탄생한 국내의 항공스포츠가 성장하고 확산되게 된 것은 항공스포츠에 대한 동호인들의 관심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와 군의 행사에 항공스포츠가 도입되어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행사가 되므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계기가 된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990년 8월 15일에는 서강대학교 개교 30주년 행사의 하나로 항공스포츠계 동문, 한국항공,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화약, 스카이다이빙 연합회, 열기구 협회의 후원으로 비행선, 열기구, 동력글라이더, 스카이다이빙 등 하늘을 향한 서강인의 정신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항공퍼레이드를 펼쳐 화제가 되었다. 박홍 총장, 재단이사장, 총학생 회장 등이 3대의 열기구에 분승하여 50-60M 상공을 축하 비행하였고, 재학생, 동문 스카이다이버 15명이 연막을 터트리며 교정에 착륙하였으며, 1986년 세계 최장거리 해협비행 신기록을 보유한 박흥수를 비롯한 동력글라이더 3대가 교정상공을 선회함으로써 수도권 비행금지구역(P-73)에서 관련기관의 인가로 민간단체 최초의 행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월간항공, 제12호).

1990년 건군 제42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10월 1일 여의도 한강고수부지에서 공군이 주최하고 서울에어로 클럽과 한국 민속연 보존회 등 민간 항공 동호인 단체가 주관하는 항공잔치가 펼쳐졌다. 국군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던 공군강변행사는 각종 동력, 무동력 활공기와 낙하산 장비 그리고 모형항공기 시범비행 등으로 엮어진 공중축제와 공중낙하를 비롯한 자이로플레인, 타면조종형 초경량항공기, ULM 등 각종 항공레저스포츠 장비가 출연하여 갖가지의 곡예비행 묘기를 선보였고, 수상스키, 모터보트 쇼 그리고 패러세일 등 수상축제도 펼쳐졌다(월간항공, 제17호, 제18호).

같은 해에 경기도 광주군 매산리 육군 특전교육단에서 군민합동으로 제1회 항공스포츠 활성화 촉진대회가 열려 항공스포츠 묘기가 선보여졌는데, 이날 행사에서는 패러글라이딩, 패러플레인, 패러세일, 초경량 항공기 등 각종 항공스포츠가 소개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이 대회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스카이다이빙과 행글라이딩이 시범종목으로 채택됨에 따라 항공스포츠에 대한 저변확대와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개최된 것으로 항공스포츠가 국민사회체육으로 점차 자리 굳혀나가고 있는 발전의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월간항공, 제14호).

이러한 행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군과 민이 합동으로 개최하는 대규모의 항공스포츠 쇼이며, 이는 항공분야에 대한 관심의 고양과 항공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많은 동호인들과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1992년 8월 15일 한강 잠원 고수부지에서 한국해양소년단 서울연맹이 주최하는 버드맨(Bird Man)대회가 개최되었고 10월 11일 부산 해운대에서 조인대회가 열렸는데, 이러한 조인대회는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인력에 의해 활공하는 행글라이더나 패러글라이더 그리고 자작 활공기로 수면 위 10m 높이에서 얼마나 멀리 날아가거나 오래 비행하는가 하는 시합으로 일본에서는 1992년까지 16차례에 걸친 조인대회가 개최되고 있다(월간항공, 제39호;스포츠항공, 92년 12월호).

이러한 대회는 하늘을 사랑하고 모험정신과 창조력이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참가할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항공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싹트게 되고 이를 통해 항공인구의 저변확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Ⅳ. 결 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항공스포츠는 선진국에 비해 출발이 늦고 여러 제약 조건으로 인하여 활성화와 성장이 어려웠다고 보여진다. 일제의 강점과 한국전쟁 등 근대화 시기의 역경에 따른 정치적 불안, 분단의 아픔이 경제적 낙후와 더불어 소재, 설계와 제작 등 기반산업조차 열악해 민간항공뿐만 아니라 항공스포츠가 태동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으며, 성장 또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국내 항공스포츠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동호인은 하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즐거움보다는 이들의 항공에 대한 사랑과 끈임없는 탐구와 노력에 의하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 땅에 항공스포츠가 태동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동호인들의 애정과 관심이 뒷받침되어 자생력있는 전문 민간단체가 결성되었으며, 항공법의 개정에 따라 전문 종목별로 안전기준을 성정하고 비행자격 제도를 도입하여 회원의 교육과 관리에 힘쓰기 시작하며 항공스포츠의 체계가 잡히게 된 것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항공스포츠를 홍보하고 참여하게 하는 데는 각 클럽과 전문협회가 다양한 대회와 행사들을 개최하는 등의 많은 노력과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으며, 군의 관심과 협조는 항공스포츠가 활성화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일반인들의 항공스포츠에 대한 인식도 점차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열악한 항공스포츠 여건 속에서도 꾸준하게 일반인들에게 확산되어 회원들이 증가됨에 따라 항공스포츠가 활성화되고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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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Incipiency and Growth of the Air Sports in the Country

Kim, Baek-Yoon Ohn, Mun-Seup

We have studied through the documents about the incipiency and growth of the air sports in the country(hang-gliding, para-gliding, sky-diving, hot air balloon, ultra-light aircraft).


1. The air sports in the country was made incipiency by the love about the aviation and the study taking adventure and the creative efforts of the friends sharing the taste

2. The affection and the concern of these friends was supported, and so the classified technical export societies were formed, and by setting up the standards of safety and the flight qualifications according to the classified events, the air sports were systematized.

3. The clubs of the friends sharing the same taste and the technical export societies made much effort for the activation of the air sports by holding the various meetings and events and so on, and the co-operation of the military played on important part in its activation, too.

4. According to these thing, the recognition about the air sports of ordinary persons was also changed, and so in the difficult environment in the country the member of its friends has been steadily increasing like this the air sports has became g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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