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19 (11:30) from 61.104.214.66' of 61.104.214.66' Article Number :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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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님의 오성산에서 미륵산비행기
야누스님의 오성산에서 미륵산비행기

바람길이:2003-84회-54시간 19분
때: 2003. 10.17(금요일) 13:30
곳: 오성산(227M)
풍향: 서-서북서
풍속:3-5m/s
기압: 991hpa
순간최대풍속: 5m/s
날씨: 맑음(운량20% 운고1200-1400)
기온: 20도
이륙시간:13:52, 14:28, 15:04
착륙시간:14:02, 14:59, 16:41
이륙횟수: 3회
비행시간: 14분+31분+1시간37분=2시간22분
착륙지: 성덕리논바닥,이륙장,미륵산
총비행거리: km
직선비행거리: 23km
최대고도: 1380m
height above takeoff: m
최대상승률: 4m/s
최대하강률: -3m/s
최대비행속도: 60/kph
기종: 바람타기용
동승비행자:
픽업: 소곡주(날보자기이원규회장님), 개인택시 손성훈님
함께한 신화창조 비행자:
함께한 신화창조 사람들:
함께 비행한 동호회: 소곡주(날보자기 이원규 회장님), 붉은독수리, 재환, 광호(산패러글라이딩)

올 가을은 평년에 비해 일찍 찾아든 겨울예감과 함께
연일 기복이 심한 일교차만큼이나 혼돈과 혼란의 연속으로
그 어느때보다 잔인하면서도 관대한 계절로 기록될 듯 싶다.

매일처럼 싸구려로 강렬하게 쏟아지는 가을 햇살은
어스름한 어둠이 몰려올때까지도 앞집의 누런 감이며
붉은 벽돌 이층집 채양에 오랫동안 도배되어 있다.
지난 여름내내 사나흘 간격으로 지리하게 퍼붓던 빗줄기대신
요즘 헐값에 쏟아붓는 햇살을 그때에 조금만 나누어 주었어도
어려운 사람들의 원성을 듣지 않고 상당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을텐데,
날씨를 관장한다는 신화속 디메테르 여신은
장사 수완이 없거나 한국말을 아예 모르거나 심술이 대단한게 분명하다.

노을이 술산으로 붉게 늘어져 짙어갈수록 담장위나 차도에는
한낮에 부서진 가을 햇살이 앙금처럼 침전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더욱 붉게 빛을 발하며 어둠속에서
담장이나 차도와 함께 도깨비불처럼 산화했다.
어스름한 어둠을 타고 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면
악령같은 기억들이 가시처럼 가슴속 한가운데에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을 찌르는 가시꽃,
물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꽃이며 이름이 불분명하고 무슨 과목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 그 꽃은 사람들의 대뇌속에 뿌리를 박고
대뇌피질에 저장된 슬프고 괴로운 기억들을 양분으로 섭취하며
가슴속에서 붉은 가시가 돋힌 꽃을 피운다.
계절에 상관없이 어느때고 피어나지만 항상 꽃을 피우는것은 아니다.
어둠이 몰려오고 비가 내리거나, 어느날처럼 춥고 궂은날씨에
음산한 기운마저 감도는 날,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면 여지없이
붉은 가시가 돋고 개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수로 섣불리 마음과 동떨어진 행동을 했다가는 바늘같은 가시에
심장을 찔리는 수가 있다. 가시끝에 심장이 살짝 닿기라도 하면
정수리를 때리는 섬광과 함께 몇 만볼트의 전류가 등골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듯 하다. 그렇게 긴 밤 긴 악몽을
뒷처리하지 못하고 시달리다가 선잠결에 일어나 셧터를 올리고
눈을 비벼 베시시한 시야로 밖을 내다보기라도하면
일찌감치 바람난 낙엽들이 밤새 몰려다니다가 도로가 구석에
수북하게 쌓인채 무서리 내린 싸늘한 가을 아침에 객사해 있었다.

주방의 깨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파란 깨진하늘,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무척 시리다.
어떤 파랑색도 저 하늘만큼 진정한 색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 색감에 감동되어 바라보는 하늘보기는 자동적으로
근처의 여러 활공장과 글라이더들이 떠올려지게 마련이었다.
그런 공상은 곧이어 환상적인 상상비행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풀어진 눈이지만 동공은 더욱 빛나며 초점은
시린 하늘에 집중된다. 그러면서 밖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자연스럽게 싹트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고 싶은 날은
언제나 나만의 주기도문을 외워야 했다. 하늘에 계신 바람이시여,
그 이름 거룩히 여기심을 알아주시고, 소인에게 임하옵시며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도 소인에게
일용할 약간의 바람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일으킨 무례한 바람을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에게 더욱 비단융단같은 좋은 바람만 주옵시고,
우리를 무례한 바람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거친 바람의 구렁텅이에서 구하옵소서.
그러나 항상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손에서 하는 일이 마음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눈과 마음은 이미 밖에 나가 놀고 뜨거운 커피 한모금은
입안으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들어온다.
그렇듯 바람이 좋은 날은 난데없이 입안이 온통 허물을 벗어
새살이 짬뽕국물에 시련을 당하거나 문턱에 걸려 죄없는 엄지발톱의
면상이 시퍼렇게 피멍이들거나 걸상에 정강이가 채이기 일쑤였다.
파란하늘에서 뒹굴고 싶은 간절한 날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일도 하기 싫었고, 어떤 좋은 음식도 구미가 당기질 않았으며,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직종에
속박되어 있는듯 한숨을 토해냈었다.

그러나 구월말 비행 이후 줄곧 사무실을 지키며 자학적인 자성과
가슴앓이로 나날을 보냈다. 빈 소주병들이 냉장고 옆에서 뒹굴고 있었다.
축 늘어진 깃에는 점점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흐린 세상을 돌파해갈 수 있는 한줌 용기와 기운마저 깡그리 사그라져
도무지 회생시킬만한 마땅한 계기를 만들 수 없었다. 끊임없는 회한과
자책감은 좋은 기상이 이어지는 날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곤 하였다.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괴로운 상념들이
녹음기처럼 반복되고, 더욱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하루하루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더디게 흘러가는듯 했다. 한없이 맑은 가을 햇살과
파란 하늘과 하염없이 흘러가는 하얀 구름들이 원망스러웠다.
매일같이 비바람이 몰아치고 몇날 며칠 쏟아 붓는 폭설로 다음해 봄이
될때까지 하얀 눈으로 세상이 쥐죽은 듯 덮여 있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하고 동떨어진 부질없는 생각들이었다.

혜영이의 회복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도 밝은 성격때문에 우울한 감성이 들고 일어설수
없었을 것으로 짐작되었고, 쾌활한 웃음과 적극적이고 활달한 면들이
회복에 가속도를 붙였을것 같다. 어쩌면 그런 마음을 유지함으로서
슬픔과 고통을 억누를 수 있는 능동적인 대처법이 유일한 치료법임을 알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결연함이 엿보였던것도 같다.
그와 때를 같이해 중간시험 주간이라 퇴원하기전 한번쯤
더 찾지 못했던것이 못내 아쉬웠다. 좀은 가벼워진 마음에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전까지도 시리도록 파랗던 하늘에 망해산 부근에서 형성된듯한
한점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게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요즘들어 부쩍 급감한 기온때문에 예민을 떠는 고속복사기가
작업실에서 심한 가래를 뱉으며 예열되고 있었다.
한편으론 오전중에 나갈 일감을 정리하며, 시험 마지막날 막바지 급하게
축소 복사를 하기위해 들이닥치는 학생들때문에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선은 연신 조금전 보았던 하늘에 가 있었다.
주간 예보가 연일 호조를 보이면서 전날에는 상당한 고도를 획득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었던터라 문 밖으로 나가 구름이 형성되는 과정을
한동안 지켜보며 구름의 흐름으로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던 적운들이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가급적 비행을 자제하려던 마음이
백팔십도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가시덩쿨로 칭칭 동여맨듯한 답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스스로를 묶어 두는것이 상책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연일 이어지는 전형적인 가을 기상을
호기로 삼아 침체된 기분을 끌어 올리는 지혜가 절실했다.
어쩌면 그것은 탈출구를 찾으려는 본능적 욕구였는지 모른다.
뿐만아니라 KBS다큐멘터리 "영상기록 병원24시"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호원열쇠 호영이와의 텐덤비행 선약이 있었고
그 일로 피스쿨장님에게 특별히 부탁해 놓은 일정이 있었기때문에
아침부터 일기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는 까닭이기도 했다.

가을은 급속도로 쇠어가고 있었다. 정오경 점심도 거른채
오성산으로 향하면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머리가
은백색으로 하얗게 새어 미풍에 뻣뻣하게 건들거리는 억새였다.
어쩌다 은백색의 억새로 덮인 둔덕을 한번씩 바람이
휘몰아치기라도 하면은 억새밭은 온통 은빛으로 너울거리는
가을 햇살들로 넘실거렸다. 어느새 노랗게 바래버린
어느집 담장 너머에 은행나무는 담장 너머 보도에 노란 잎을
몇장 떨구며 가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어 있었다.

지난 몇년동안 비행을 즐기면서 가장 많이 찾은 산은 오성이었다.
첫비행을 한 활공장도 오성산이었고,
어렴풋이 비행의 맛을 처음 알아가던 곳도 오성산이었다.
언제나 금강은 광대한 능구렁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미끄러지듯 서해로 흘러들었고, 강 건너에 드넓은 십자뜰은
오성산에 오를때마다 변함없이 가슴속을 가득 메우곤 하였다.

반달이 넘게 찾지 않았던 오성산은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가끔 남서쪽에서 발생된 적운이 서풍에 밀려 갈때마다 더욱 깨끗해진
파란 하늘이 오성산자락 전체를 한층 선명한
가을 채색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약간 센듯한 서풍이
오성산 좌측의 독립봉을 넘어오면서 휘감기듯
윈드색을 홀리고 있었다. 넋이 나간 윈드색은 신들린듯 거칠게
나풀거리다가도 정신을 잃은듯 한동안 미동도없이 축 늘어지기도 하였다.
풍속과 약간의 가스트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기상은 비행을 하기에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부여하고 있었다.
멀리 금강너머 잔디밭 고수부지에서 피스쿨장님이
강의를 하고 있는게 보였다. 2학기부터 군산대학교 체육학과
전공선택 시간강사로서 실습위주의 첫 출강을 하게 된 것이다.
멀리에서 보아도 상당히 진지하게 강의에 열중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피스쿨장님에게는 이미 가게를 나서기전 전화로 오성산 비행계획을
알려주었지만, 또다시 좋은 기상에서 혼자만의 리그를 펼치기에는
너무도 고독한 비행이 될것 같아 일명 소곡주 이원규회장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금강 건너편에서 피스쿨장님의 강의를 돕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곧 올라오겠다는 연락을 받고 먼저 이륙하여 탐색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약간 센듯한 서풍을 무시하고 너무 우측으로 빠지는 바람에
이륙장쪽으로 다시 붙이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륙장 앞까지
되돌아 왔을때는 이미 상당한 고도를 잃은 상태였다. 산사면을 벗어나
작은 가지능선에서 거칠게 올라오다가 깨지는 오성산 특유의 반경이 좁고
부정형인 열을 잡아 짧은 선회로 어떻게든 고도를 회복할려고 노력했지만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더욱 고도가 낮아져 포기하고 금강변 빈 논으로
기수를 돌렸다. 혜영이가 착지했던 상공을 지날때는
다시금 악몽이 되살아나는듯해 멀리 금강을 바라다 보았다.

마침 금강 건너편에서 오성산으로 바쁘게 움직이던 이회장님의
픽업으로 다시 이륙장에 오를 수 있었다. 처음보다 풍속은
다소 강해진듯 했으나 풍향은 서북서로 좀더 나아졌다.
풍향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풍속이 강해지자 약간 식상한듯
이회장님이 장비를 챙기지 않고 멈칫거렸다. 오성산은
고도가 낮고 주위가 평야지역일뿐만아니라 해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약간의 풍속이 가미되면 오성산 앞쪽 작은 분지나 뒤쪽에서
강하게 열이 형성되었다해도 쉽게 버불성으로 깨지는 경향이 있어
상당히 거친 면이 있었다. 더군다나 군산지역은 다른곳에 비해
항상 풍속이 강한게 탈이었다.
그러나 높이에서 오성산 친구들(오성산 매)이 선회를 하고 있는것으로보아
아직은 비행을 포기하기엔 이른 시각임이 분명했다.
사리지 않은 캐노피를 꾸려 좀더 강하게 느껴지는 바람을
안고 먼저 힘차게 재차 이륙을 시도 하였다. 뭔가를 해소 하지 않고는
산을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바람이 얌전해지면
텐덤비행을 해야하는 일정때문에 산을 내려갈 수 없었지만,
한동안 침체된 기분을 끌어 올릴 수 있는것은
비행을 하며 폐부 깊숙히 바람을 들이 마시거나 금강이나, 망해산을 바라보며
멀리 희미하게 손짓하는 미륵산을 꿈꾸는 방법으로
예전과 같은 비행 욕구를 되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성산 비행으로 몇년동안 사귀어왔던
오성산 숲속의 수많은 야생화와 나무들, 다람쥐, 산토끼와 황조롱이,
언제나 오성산 하늘을 서성거리는 하얀 구름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치며
반겨 줄것만 같았다.

예상대로 이번엔 처음보다 상당히 강하게 느껴졌다. 적운또한
적당하게 몸을 부풀리며 꾸준하게 남서쪽에서 형성되어 흘러왔다.
대부분 오후 3시가 가까워지는 시각이면 풍속이 강해지면서 발생되었던
구름들이 동쪽으로 밀려가 오성산 하늘은 깨끗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적운들이 지속적으로 적당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동안 우측봉우리와 좌측 기상대를 더듬어 보아도
이렇다할 고도를 올려주지는 못했다. 부정형으로 발생된 열은
대부분 운저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흩어지기 일쑤였고 다소 강해진 풍속때문에
드리프트가 심했다. 괜히 답답한 마음에 탑랜딩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보기로 했다. 이회장님은 여전히
여기저기 더듬으며 특유의 붉은독수리 스타일로
광범위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오성산 친구들은 이륙장 앞에서
처음보다 훨씬 높게 고도를 잡고 있는게 보였다. 그때 오성산 친구들 곁에서
이회장님이 몇번의 선회로 상당히 높은 고도를 획득하고 있었다.
좀전보다 약간 풍속이 약해지면서 다시 열이 형성되기 시작한게 분명했다.
이때를 놓칠새라 다시 곧바로 이륙하여 우측 골에서
제법 실하게 형성된 열기류에 캐노피 끝을 갈고리처럼 걸고
거칠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코어에서 빠지지 않기위해 가진 애를 쓰며
선회를 거듭했다. 어느새 3-4점대로 꾸준하게 올려주던 상승음이 미약해졌을때는
서해안 고속도로 군산휴게소 조금 지난 나포뜰 1200미터 상공이었다.
서늘한 기운과 함께 운저에 도달에 있었으나 구름층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구름은 산발한 귀신처럼 산산히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열이 생명을 다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미약한 바리오의 상승음이
곧바로 맥박을 멈추는가 싶더니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왕성하게 살아 숨쉬는 망해산(202미터) 부근의 적운을 포식하기 위해
측배풍을 받고 빠르게 움직여 나아갔다. 망해산 아래 저수지에 도달했을즈음엔
고도가 9백미터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예상대로
제법 실한 열기류를 만날 수 있었다. 끌어 잡아 당기듯 캐노피에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심장이 터질듯 자지러지는
바리오음이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살살 달래듯 안정된 선회를
거듭하며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이번엔 구름층을 뚫고
최고고도 1380미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선회하면서 구름사이로 반사되는 군산 앞바다의 잘잘한
은빛 물결이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누런 들판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
가을 햇살에 도배된 도시 고층아파트의 윤곽이 뚜렷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세상은 그야말로 아무일 없는듯 지극히 평온해 보였다.
이를 악물고 망해산에서 최고고도를 획득할려고
노력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망해산을 벗어나면 미륵산까지
장장 약 17킬로의 허허벌판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삐댈만한 이렇다할 산 하나 없는 드넓은 들판을 손쉽게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망해산에서 최대한 고도를 확득하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큰 이유였다.

황등쪽으로 드리프트 되면서 망해산을 벗어나
최고점에서 빠져나오자 이젠 다시 빠른속도로 고도가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늘어지듯 하강하는 바리오음에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못가서 착지를 해야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각도로 보아 삼기까지는 문안히 도달할 수 있는 고도였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비울 수 없었다.
미륵산을 주시하며 한번쯤 더 걸려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귓전에 스치는 바람소리와 발아래 펼쳐진 누런 들판 곳곳에
점점히 박힌 갖가지 모양의 운영들이 넓은 냇가를 넘어가는
징검다리처럼 보였다. 그때 황등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신평리 부근 상공에서 운좋게 2점대의 열을 걸어
1000미터까지 떨어진 고도를 다시 1200여미터대로
회복시킬 수 있었다. 흘러가면서 고도를 올렸기때문에
이미 황등을 우측에 두고 비행하고 있었다.
이제는 큰 이변이 없는한 이정도 고도면 미륵산까지
직선 비행을 하더라도 충분히 도달 할 수 있을듯 싶었다.
그 시점에서 한 손은 토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 황등과 드넓은 들판, 가까워지는
미륵산을 담으며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삼기를 지나면서 고도가 현저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넉넉하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삼기 농공단지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고도와 도달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륵산에
붙여 비행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미륵산 끝자락인
기양리에는 착륙할 수 있으리라 생각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삼기 지상연습장 상공을 지날때 고도가 490여미터를 가르키고 있었다.
보라색 캐노피가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토글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삼기 농공단지 상공으로 직행하며
한번쯤 걸려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버릴 수 없었다.
예상대로 삼기농공단지를 관통할 즈음 약하게 올려주기 시작했다.
300여미터로 떨어진 고도를 다시 미륵산 키높이와 동등하게 회복한뒤
지난 여름 가슴속까지 얼얼할정도의 냉기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오랫동안 텀벙거렸던 미륵산 계곡의 선녀탕을 지나
곧장 미륵사지 뒷편의 6부정도 능선에 가까스로 붙일 수 있었다.
사자암으로 들어가는 커피 자판기가 놓여 있던 능선이었다.
그 등산로 쉼터에 도달하기전 능선 산사면을 따라
활엽수 이파리들이 자지러지듯 허옇게 뒤집어지는 광경은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준엄하게 보였던 미륵산이
열열히 반기는 환영식 같았기 때문이다.
곧바로 미륵산에 안기듯 능선 산사면에 밀어 붙여 적당한 풍속으로
미륵산 좌측 장군봉 가지능선을 타고 오르는 바람을 안고
몇번의 릿지로 손쉽게 미륵산 정상을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한시간 30여분만에 오성산 정상에서 미륵산 정상으로 날아와
비행하고 있는것이다. 아!..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있는 힘껏 내지르는 포효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안에 들어 있는
모든 답답증과 가시꽃을 뿌리채 뽑아 토해내고 싶었다.
난데없이 들리는 고함소리에 고개를 젖히고
미륵산을 찾은 등산객이 정상에서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코끝이 찡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오성산 미륵산 하늘길이
절망모드에서 현실모드로 바뀌고 있었다. 벌써 2년정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성산 미륵산 하늘길이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진것 같아 허탈하기까지 하였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듯 하였다. 어디라도 날아갈 수 있을것처럼
한동안 미륵산 자락을 비행하였다. 오성산에서 이륙하여 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조금전 힘들게 미륵산을 찾아 예전처럼
교육연수원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정상에 오른뒤 홀로 이륙하여 비행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지난 시간은 모든것이 공허한 꿈처럼 생각되었다.

미륵산은 어느 한곳 빼놓지 않고 모든것이 눈에 익어 있는 산이다.
미륵사지도 그렇고 장군봉 뒷쪽의 사자암도 그렇고, 교육연수원이나,
기양리나, 우측의 중계탑고 그렇고, 치마바위도 그러했다.
특히 오성산에서 미륵산 까지 날아와 미륵사지 동탑과 서탑, 연못 위를
선회 비행하며 내려다 보는 일은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치 서동왕자라도 된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미륵산은 비행을 시작 하면서 오성산 다음으로 많이 찾았던 산이다.
2년 전인 2001년 10월 31일 오성산에서 미륵산을 향해 하늘길 비행을
처음 시도했을때는 고작 2.3킬로를 비행하는데 그쳤었다.
오성산에서 200여미터의 고도만 획득해도 넉넉하게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때만해도 미륵산은 너무도 희미하게 보여
마치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보였었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밤에 불쑥 오성산에서 미륵산까지 차도를 이용해
답사해본적도 몇번 있었다. 언젠가는 길위의 하늘길로 가리란 꿈을 안고.
그러나 이제는 그토록 갈망하던 오성산 미륵산 하늘길이 열리고
신기루처럼 보였던 곳에 발을 디뎠다는것은 나에게 가슴벅찬 감격의 순간이었다.
미래는 현실로 도래했다. 하지만 이제 그 미래는
비행일지를 작성하는 지금 이 순간 벌써 보이지 않을 만큼
과거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엊그제의 옛 이야기꺼리고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성산 미륵산 하늘길라는 타이틀을 걸고
오성산에서 미륵산까지 비행을 해서 도달했다는 기록은 나에게
또는, 다른 동호인게 표면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오성산 미륵산 하늘길에 비하면
너무도 가식적이고 턱없이 모자라는 거리인 것이다.
그런 생각에 모든 현실이 한순간 거품처럼 터지는 듯해 씁쓸함마져 든다.

비록 요즘 속출하는 기록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비행고도와 거리지만
기록을 떠나 비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자연에 대한 값진 교훈은
오성산 미륵산 하늘길을 수십번 왕복해도 얻기 힘든 일임을 알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매개체로 비행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편재되는 방법, 그것을 터득해 알아가 가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눈이되고,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강이되고,
고독한 산이 되고, 바다가 되고, 달이되고, 가을햇살이 되고,
운동화가 되고, 잡초가 되고, 담장이 되고, 낙엽이 되고,
슬픈사람이되고, 기쁜사람이되고, 물고기가되고, 별이되고,,
그런 즐거움을 낚는 일은 신화창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초창기 정재옥회장님을 비롯한 박주용 왕회장님과 그밖에 여러
선후배 회원님들의 정신적인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특히 솔선수범 정신적, 기술적인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려놓고 수많은 가능성을
부여하며 앞서가는 산패러글라이딩 피수용 스쿨장의 노력은 큰 도움이 되었다.

비행은 가벼워지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언젠가 바람이 비행중에 귓전을 스치며 말해주었던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는 습관이 있다.
말은 쉬워도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부인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래서 비행을 배우는 과정은 처음부터 그렇게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뼈가 부러지고 허리를 다치는 중상을 입어가며
비행을 통해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더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각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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